모란 시인 영랑의 생가 원형복원 된다!

가족 고증 통해 문화재청 승인 받아 이달 말 완공

김금희 기자 | 기사입력 2013/10/14 [12:13]

모란 시인 영랑의 생가 원형복원 된다!

가족 고증 통해 문화재청 승인 받아 이달 말 완공

김금희 기자 | 입력 : 2013/10/14 [12:13]
▲ 전남 강진군이 추진 중인 영랑 김윤식 생가의 문간채 복원공사로 지난 7일 문간채지붕에 이엉을 잇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강진군
   한국 현대문학사에 큰 자취를 남긴 영랑 김윤식(永郞 金允植, 1903~1950)선생의 생가 문간채가 복원을 눈앞에 두고 있어 20세기 초 원형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전남 강진군은 1억 4천만 원의 사업비로 올해 초 시작된 복원공사가 담장과 협문(안채와 사랑채를 오가는 좁은 문), 문간채 등이 이달 말 완공된다고 밝혔다.

   이번 영랑생가 복원공사는 ‘사랑채 앞에도 문간채가 있었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담장과 협문이 있었다.’는 선생의 3남인 김 현철(미국 거주, 전 언론인)씨의 증언을 토대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문화재청의 설계승인을 받아 문간채(24.47㎡, 홑처마, 초가)를 비롯해 길이 44.4m, 높이 1.4m의 담장, 협문(1.53m, 홑처마, 초가)을 복원하게 된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선생이 서울로 이거한 뒤 몇 차례 전매되었다가 1985년 강진군이 매입하여 1986년 지방기념물로 지정했고 1992년 가족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원형대로 복원되었으며 지난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자료 제 252호로 지정되었다.

   강진군은 이번 복원으로 재능과 지식을 두루 갖춘 ‘영랑 김윤식’의 생가라는 역사문화적 가치와 함께 20세기 초반 건조물인 전통한옥과 근대 건조물 이행기의 가옥으로서 문화변용의 형태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모란의 시인으로 남도서정시의 대가인 영랑의 문학적 세계를 후손들이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교육의 공간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게 되었다.

   김동남 강진군 문화예술팀장은 “영랑생가는 대한제국시대 전형적인 부농의 생활공간”이라고 말하고 “문간채 복원이 기능적인 특징과 함께 배산과 조망이 어우러진 공간적 정서를 체감할 수 있을 것” 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영랑은 본인과 가족들의 창씨개명을 거부한 독립투사로 서울 휘문보고 재학시절인 1919년 기미독립운동이 발발하자 강진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일경에 의해 대구형무소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으며 동인지‘청구(靑丘)’를 통해 문학 활동을 시작했고 용아 박용철 등과 함께 순수시 최초의 전문지인 ‘시문학’지를 발간하면서부터 일본 강점기 치하에서의 설움을 시로 표현하고 민족기상을 은연 중 문학을 통해 불살라 현대문학사의 큰 별로 남았다.

   한편 강진군은 지난 2012년 3월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문학파 9명의 시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시문학파기념관’을 개관했는데 한국 문학사상 최초의 문학유파 기념관으로 지난 6월 전라남도로부터 제 1종 전문박물관 등록증을 받았다.
  • 도배방지 이미지

영랑생가 복원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네트워크배너
서울 인천 대구 울산 강원 경남 전남 충북 경기 부산 광주 대전 경북 전북 제주 충남 세종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