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4회>

"유신 언론인방문 할 테니 기다려라"협박에 군부대로...

김동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2/12/10 [17:17]

"반란의 도시"<4회>

"유신 언론인방문 할 테니 기다려라"협박에 군부대로...

김동문 논설위원 | 입력 : 2012/12/10 [17:17]
아침 8시께 회사 정문에 도착하니 향토사단 소대병력이 정문에 배치되어 신문사 출입자들을 통제하고 있고 편집국에 들어서자 편집국장의 주재로 비상회의가 열리면서 부사장의 최종 결정에 따라 19일자 신문발행이 중단되고 전 직원은 일체의 신분을 숨기고 각자 집에서 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사장(심상우)은 독일 언론사와 자매결연으로 외유 중 급보를 받고 일본 공항에 발이 묶여 부사장이 신문 제작 중단을 결정했고 가족과 함께 처가인 완도를 가던 중 나주에서 버스가 중단되는 바람에 나를 찾아온 이유였다.

이 차장이 왔기에 세 사람 중 박 경장의 피신을 서둘며 뒷문을 나서는 순간, 옆집 식당 쪽에서 총성과 함께 젊은이들의 발자국소리가 웅성거린다. 20대 중반의 장발족, 서넛이 예비군 무기고 에서 탈취한 총기로 . 허공을 향해 공포를 쏘는 바람에 우리 세 사람을 더욱 두렵게 한다.

저런 무리들이 무기고를 약탈 했다면 이건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폭동이자 반란이다,

서울 지사 오 부장의 피난하라는 소식과 광주에서 신문사가 불타고 있다는 게 사실 같다. 아침 출근길에 버스 정류장에서 전투복 차림으로 보안과장이 전해준 광주폭동 소식과 일치한다.

치안을 담당할 나주 경찰서까지 피습되고 치안부재의 상태에서 이웃집에서 들려오는 총소리에 세 사람은 두꺼운 벽 쪽으로 몸을 피했다. 19일 오후8시 무렵 어둠이 깔리자, 박 경장을 십리 남짓한 그의 집으로 보내고 사무실은 이 차장과 둘만 남아 있었다.

밤 9시께 전화 벨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서울 소식인가 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거기 유신 언론인 집이지 방문 할 테니 기다려" 험악한 목소리의 협박 전화가 쩌렁쩌렁 울린다. 시퍼렇게 질린 표정으로 수화기를 내려놓은 내게 "별일이야 있겠는가" 그가 내 신변을 걱정을 한다

협박전화로 파랗게 질린 내게 " 이곳은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 자네는 빨리 피신하게..폭도들이 총을 들고 찾아올 것 같네" "빨리 서둘게 남은 식구들은 내가 지킬테니" 피신 할 것을 권유하나 마땅히 찾아 갈 곳이 없다.

경찰서가 철수한 마당에 어디로 피신 한단 말인가? 동료가 우선 예비군대대로 피신하라며 나를 위로 한다. 나는 1년전인 79년 10.26사태때 "죽이겠다"는 협박전화에 이어 두 번 째 받은 협박전화인 셈이다.

박정희대통령 "유고"의 변란 속에 <주석- >1979.10.26. 박대통령의 서거로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을 대행한 최규하 국무총리는 10.27.04:00시를 기하여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에 정승화, 합동수사본부장에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이희성 육군참모차장을 임명했다.

12.1. 국회는 만장일치로 대통령 긴급조치9호의 해제를 정부에 건의했다. 12.6. 최규하 권한대행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12.8. 대통령은 긴급조치 제9호를 해제하고, 문익환 목사, 함세웅 신부 등 긴급조치 위반자 68명을 석방하고, 김대중을 가택연금 상태에서 해제시켰다. 12.10. 국무총리에 신현확 경제기획원 장관을 임명했다.

11.26. 국회는 여야 만장일치로 국회에 개헌특위(헌법개정심의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국회주도의 헌법 개정을 추진하려 했지만,1980.1.18. 최규하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개헌안의 발의 책임이 대통령에 있다는 것을 이유로 정부가 개헌작업을 주도하겠다며 80.3월 중순까지 대통령 직속으로 ‘헌법개정심의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밝혔다.

80.2.9. 신민, 공화 양당은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직선제, 임기 4년에 1차 중임을 골격으로 하는 헌법시안을 확정하고 이르 국회 개헌특위에 제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이희성 계엄사령관은 무분별한 정치과열 현상을 용납할 수 없다고 천명했다.

80.2.29. 대통령은 윤보선, 김대중, 지학순 등 긴급조치 위반자 687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였다. 항간에서는 이를 ‘서울의 봄’이라 불렀다.

80.3.1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중장으로 진급, 3.5 정승화에 대한 첫 공판 개정, 3.6. 박흥주에 대한 사형 집행, 3.13. 정승화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4.7. 신민당 입당에 관심을 보였던 김대중이 여의치 않자 신민당 입당을 포기한다 선언했다.

4.14. 대통령은 내외정세에 대한 특별담화를 통해 학원 소란 사태와 시회 일부의 국민단합 저해 언동에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날 대통령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앙정보부장 서리에 겸임 발령했고, 이는 세간에 ‘안개정국’이라는 의혹을 야기했다.

4.16. 최규하 대통령은 정부의 주도로 개헌안을 마련할 것이라 했고, 신민당(야당) 의원들은 국회가 주도권을 잡겠다고 주장하면서 대립했다.

4월에 들어서면서 학원가에 폭력시위가 확산됐다. 21개 대학에서는 학원민주화를 거부하는 총장, 학장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고, 24개 대학에서는 어용교수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12개 대학에서는 재단비리 청결을, 11개 대학에서는 학교 시설 확충을 요구하는 농성, 시위가 발생하는 등 전국 대부분의 대학에서 소위 학원민주화 운동이 전개됐다.

4월중순부터는 병영집체훈련 거부 문제가 투쟁의 중점 이슈로 전면에 내걸고, 학장실 점거, 기물 파괴, 화형식, 교수폭행 등 과격화 조짐을 보였다. 4.24.에는 서울 시내 14개 대학에 재직중인 교수 361명이 이에 동조하여 족벌운영사학 경영자 퇴진, 군사교육 개선, 교수 재임용제 철폐 등으로 내용으로 학원민주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5월에 들어 학생 소요는 학원문제를 떠나 정치문제로 비화되었다. 5.1. 서울대 총학생화는 계엄령 즉각 해제, 유신잔당 퇴진, 전두환-신현확 사퇴, 정부주도의 개헌 중단, 노동3권 보장 등을 내걸고 본격적인 정치투쟁을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5.2-13일까지를 ‘민주화투쟁기간’으로 정하고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5.7. 국민연합 공동의장은,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이었다. 윤보선, 함석헌과 마찰을 빚은 후 혼자서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하여, 계엄해제, 정부주도의 개헌 포기, 전두환-신현확의 퇴진, 정치일정 단축 등을 요구하고, 유신잔당의 음모를 단호히 분쇄하는 민주화운동을 과감히 전개할 것을 선언하였다.(위 학생들의 구호와 정확히 일치)

5.8. 학생시위가 학내 문제에서 정치문제로 비화되고, 시위 양상도 교내 농성에서 가두 폭력으로 확산되어 경찰과 충돌이 발생하자 김옥길 문교부 장관이 전국 대학 총장들에 공문을 보내 학생시위의 자제를 당부했고, 5.10. 전국 85개 대학총장들은 혼란이 계속되면 휴교 조치하겠다고 결의했다.

노동자 투쟁도 이에 가세했다. 4.9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농성투쟁을 신호로 하여, 4.29일가지 전국적으로 719건의 노사분규가 발생했다. 4.21일에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탄광(동원탄좌광업소) 근로자 3,500여명이 경찰지서, 사북역 등을 위시하여 사북읍 정체를 점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5.9.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 역시 김대중 및 학생들의 정치 노선에 가세했다. 계엄령 해제, 정부의 개헌작업 중지, 임시국회 즉각 소집 등을 촉구했고, 당시 여당이었던 공화당의 김종필 역시 이에 가세할 뜻을 밝혔다.

5.10. 대통령은 7박8일 일정으로 사우디 쿠웨이트 등 중동 석유방분을 위해 출국하면서 출국인사를 통해 공공질서 유지를 호소했다.

5.10. 김영선 중앙정보부 2차장이 ‘5월 중순, 북괴가 남침할 가능성이 있다’는 ‘북괴남침설’을 전두환 중앙정보부장서리에게 보고했다. 5.12. 임시국무회의가 소집되고, 북괴남침 정보가 보고 되었으며, 군과 경찰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졌다.

5.10. 여야 총무는 5.20일에 제104회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개헌특위가 마련한 헌법개정안을 접수하여 정부에 이송하고 계엄해제, 정치일정 단축 등을 다루기로 합의했다. 신민당은 정부의 ‘헌법개정심의위원회’의 해체와 계엄령 해제 촉구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정부는 5.12-28간 전국 12개 도시에서 가지려 했던 개헌 공청회를 학생들의 폭력 시위 등 치안 불안정을 이유로 무기 연기했다.

5.13. 연세대 학생을 주축으로 하여 서울 시내 6개 대학생 2,500명이 세졸로 일대에서 야간 가두시위를 벌였고, 5.14. 정오, 서울지역 27개 대학 대학생 7만 여명이 일제히 화신 앞, 남대문, 서울역, 광화문 등 중심가를 메우면서 22:15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에 김종환 내무장관은 신현확 총리에게 경찰력만으로는 서울 시내 일원의 학생 시위에 대처할 수 없으니 군병력의 투입을 건의했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에는 군이 주요시설에 대한 경계를 맡아 줄 것을 요청했다.

5.15.24:00경, 서울역 앞 광장 및 도로에 35개 대학 학생 10만 여명이 집결하여 3일 째, 시가지 시위를 벌였고, 부산, 대구, 광주, 인천 등 지방에서도 24개 대학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감행하여 경찰과 충돌했다. 특히 서울역 시위에서는 경찰 가스차 3대가 전소당했으며, 버스 1대가 경찰에 돌진하여 전경 1명이 사망했고 4명이 부상당했다.

5.15. 19:50분 신현확 국무총리가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늦어도 연말가지 개헌안을 확정하고, 내년 상반기에 양대 선거를 실시, 정권을 이양하겠다는 약속을 추호도 변동 없이 지켜가고 있으며, 정치일정도 최대한 단축하고, 계엄령도 사회가 안정되는 즉시 해제할 것이니, 학생들은 정부의 약속을 믿고 자숙하고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5.15.자정, 서울의 23개 대학과 지방의 24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은 고대 학생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가두시위를 일단 중지하고 정상수업에 들어 갈 것을 결의했고, 이에 따라 5.16일, 서울, 부산, 대구, 전주 등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정상수업이 이루어 졌으나, 전남대 조선대 등 광주 시내 9개 대학 대학생 2만여 명은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시국 성토대회를 가진 다음 야간에는 횃불시가행진을 벌였다.

5.16.09:30분, 김대중 신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은 비상계엄 즉시 해제, 정부주도의 개헌작업 포기, 정치일정 연내 완결확정 등 6개항의 시국수습 대책을 공동 발표했다. 국민연합은 5.7자 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에서 요구한 사항에 대해 5.19까지 정부가 답변을 하지 않으면 5.22. 전국적으로 민주화촉진국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민주화투쟁을 전개하겠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제2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을 발표했다. 이에 전국대학 총학생회장단이 이대에 모여 김대중이 발표한 제2민주화촉진국민선언문에 적극 동조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5.16.22:30분, 대통령은 중동순방 일정을 하루 앞당겨 귀국했다.

5.17. 민관식 국회의장 대리는 여야 국회의원 186명의 요구에 따라 제104회 임시국회를 5.20.10:00시에 소집할 것을 공고했다.

"유신독재정권은 막을 내렸다"고 밤세워 술판을 열고 "축하파티"를 한다는 제보를 받고 취재를 한 이후 그날밤 걸려온 "유신 언론인은 숙청 대상이다" 란 협박전화를 웃어 넘겼는데 지금은 총을든 폭도들이 아닌가?

예비군 대대로 전화를 돌렸다 대대장 정 소령의 음성이 들린다.

"김 차장이네, 부대로 피신을 해야 겠네, 부대사정은 어떤가?"

"여기도 이미 전화국 앞 송전탑 부근은 버스에 무장한 폭도들이 부대 정문을 차단하고, 마구 위협사격을 하고 있오"라며 당황해 한다.

"무조건 부대만은 지켜야 하네. 부대가 무너지면 큰일이네" 날이 밝은대로 부대로 가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유신 언론인"이란 협박전화가 심상치 않다 개인감정을 드러낸 단순 협박전화라면 0기자나 아무게로 호칭할 일인데도 "유신언론인"이란 표현이 예사롭지가 않다.

 당시는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의 서거에 따라로 계엄령이 선포 되고 부터 자칭 민주화 운동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가 '유신잔당' '유신1중대'며 특히 언론사를 향해'유신언론'이란 신종어를 사용했기에 '유신언론인'이란 협박전화를 받고 보니, 야당 정치권이 개입된 사태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도 '전남매일신문'은 전남지방의 유일한 야당지로 알려져 있어 내가 "유신언론인"이란 말을 들을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준위가 몽둥이와 각목으로 무장한 야당 선동꾼 에게 놀라 도망쳐온 일. 경찰서가 피습되고 삽시간에 대량의 총기가 탈취되고, 예비군부대까지 위협을 받고 있다면 이는 분명 폭동이요 반란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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