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사태) 반란의 도시 (9회)

마지막 월남전 이야기로 병사들을 위로하며..

김동문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3/01/03 [19:50]

(광주사태) 반란의 도시 (9회)

마지막 월남전 이야기로 병사들을 위로하며..

김동문 논설위원 | 입력 : 2013/01/03 [19:50]
66년 12월 맹호부대 33연대가 주둔하던 퀴논지역의 악몽이 되살아난다. 내가 소속 되어있는 십자성부대는 영현중대가있다. 전사자의 유해를 봉안 고국으로 안치되기까지 봉안하는 일이 주 임무다. 이날 퀴논지역 36명의 소대병력이 베트공의 기습으로 전멸되었다는 급보를 받고 현지를 찾았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상! 심야에 수류탄 투척으로 처참하게 희생된 시체들은 형체도 없고 인식표(군번)마져 식별 할 수없는 처절한 현장에서 우리는 피울움속에 시신을 수습해야 했다.

이같은 참상의 원인이 월남인들의 시위와 데모가 빚은 결과임이 현장 조사에서 밝혀지고 이들의 게릴라식 테러작전의 전술이 월남전에서 드러났다.

이 부대는 연대본부 인접지역으로 안전지대다. 세겹의 원형 철조망에 조명탄과 대인지뢰(크레모아)가 매설되어 있고 1번 철선에는 수백개의 조명탄 설치 되었는데도 소대병력이 전사했다니 도무지 믿을수 없는 일이다.

이는 북괴가 월남전에 투입했던 특수 게릴라 부대의 전술로 예상된다. 이부대는 1개월전 1번 철책선에서 조명탄이 터지자 밤새 총격전이 벌어졌다. 새벽무렵 작전이 종료되고 수색조의 확인 결과 철책선 주변에서 수 십마리의 죽은 소떼들을 찾아냈다.

이날 전투는 들소 때들을 앞세우고 야간 기습을 했던 베트공들은 도주하고 소떼들을 소탕했던 한밤중의 전투로 끝이 났다. 다음날 이른 아침 현지주민들은 "한국군 물러가라! 소 값을 변상 하라!며 농성을 벌렸다.

다음날 아침은 부대로 몰려온 현지주민들이 소떼를 죽였다며"소값을 내놓아라! 한국군은 물러가라!"며 시위를 벌였다.

주월 사령관의 지휘방침에 따라 대민지원을 최우선으로 임해야 했던 한국군은 소 값을 변상하고도 연대장은 보직에서 교체되었다.

주민들의 잦은 시위가 부대장의 문책으로 이어지고 1개월동안 철책선 조명탄 보수공사가 끝난지 하룻만에 00연대 0소대의 전우들이 참변을 당했다.

그들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참전한 한국군에게 작전중 사고로 죽은 소값을 변상 받고도 한국군 물러가라는 시위는 연일 벌어졌다.

월남전 당시의 모습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대를 내 놓으라고 부대앞 전면에 몰려든 저들의 모습에서 패망직전의 월남이 떠오른다. 이야기를 듣고있던 김중위가 갑자기 "선배님! 월남인들은 한국군에게 죽은 소 값을 요구했지만 부대를 내놓으라며 예비군 무기고를 털어 우리에게 총뿌리를 겨누는 저들은 누구입니까?

"저들은 우리국민이 아닌가요" 김중위의 격앙된 외침에 나는 말문을 잃었다. 한편으로 그의 질문에나는 자신감 이 생겼다. 투철한 의식과 사고력을 지닌 젊은이가 이 나라 국군장교 인데 내일의 진압 작전은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믿어졌다.

아무리 6.25동란을 모르는 철부지 전후 세대들이지만 저들은 이미 경찰서를 습격하고 향토 예비군의 총기류를 탈취한 체 그 총으로 무장하고 우리 앞에 서 있다. 분명 저들을 선동하는 자는 북한에서 침투지 한 고정간첩과 좌익 세력들의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단정지었다.

지금 까지 퍼지고 있는 유언비어들을 간추려볼때 분명한것은 공산화를 꾀하는 좌익분자들의 치밀한음모로 결론을 내리고 내일의 진압 작전을 다짐하면서 냉수 한 사발씩을 나눠 마셨다, 날이 새면 부대를 찾아 온지 4일째가 된다.

집에 남은 가족들이 생각난다.11살 아홉 살의 두아들과 항상 아내품에 매달리는 네 살짜리 막내딸 젊은 나이에 전쟁 미망인이 되신 어머니, 고생만 해온 아내, 가족들의 생각이 처음으로 떠오른다.

동료 이 차장역시 자신의 가족들을 지척 에 두고도 꼼짝없이 사무실에 묶여 완도 처가 집 피난길에 나를 찾아온걸 후회 할 것 같다. 우리 집은 대량의 무기가 탈취된 금파 옆 무기고에서 100여 미터거리 에 있어 더욱 걱정 이 된다.

지척에 무기고가 피습되고 사흘동안 들려오는 총성에, 젖먹이까지 8명의 식구들이 사태 3일째인 오늘밤에 생각이 나니 왠 일일까.? 유신 언론인이라는 협박과 서울 지사 동료의 긴급 피신 연락을 받고 도망쳐 온후 가족들을 잊은 내자신이 부끄럽다

왜 나를 그들의 타도 대상인 유신 언론인으로 분류 되었을까?. 사태 이전까지 우리신문사는 야당지로 분류되었는데 한 순간에 유신언론으로 협박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4공화국 시절 유신선포와 함께 한국 기자 협회 산하 3천 여명의 기자들에게 정부가 신분을 인정하는 출입증 발급 제도에 따라 문공부 장관 명의의 프레스 카드 제도를 시행했다

70년 유신선포로 정부가 프레스카드제를 통해 언론의 자율정화를 위해 시행된 제도를 가리켜 운동권들은 당시의 기자들을 유신 언론인으로 지칭하고 그들은 우리들을 타도의 대상으로 여겼다.

반공 방첩의 표어가 새겨진 벽시계가 24일 새벽 3시를 알려준다.

 정 소령이 건네준 모포 한장을 들고 긴 나무 의자에 누웠다.

 24일 아침 진압작전을 앞두고 문득 월남 퀴논 지역에서 산화한 36명의 전우들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전사자 명단 에서 발견한 김상병은 고향 친구이자 군 입영 전에 같은 직장을 다녔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읍내 극장에서 영사 기술을 배우고 나는 선전실 에서 간판을 그리는 조수 생활을 했던 유일한 고향 친구의 이름 석자를 전사자 명단 에서 발견했다.

안 돼! 안 돼! 외마디 비명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리자 쥐었던 칼빈 소총을 움켜 잡는 순간 꿈속에서 깨어났다. 비몽사몽간에 지른 소리에 당번병이 달려와 나를 깨운다. 벽시계가 아침 8시를 알린다. 새벽녁에 잠시 눈을 부쳤는데 어느덧 3시간 동안 악몽에 시달린 모양 이다. 대대장 실 주변이 너무 조용 했다.

당번병이 대대장과 현역병16명이 출동 했다고 알려 준다, 그가 출동 하면서 당번병과 함께 부대에 남은 방위병과 예비군들의 안전을 당부 하고 만일의 사태에 부대를 철수하라는 당부를 하고 출동했다는 것이다. 16명의 병력으로 진압작전에 나섰다는 소식에 심장이 멈추듯 전신이 떨려온다.

저들은 줄잡아 1천여명의 병력으로 추정되고 있어 1당 100의 작전 이다. 부대 전 인원 60명이 출동하기로 다짐 했는데 대대장은 나를 포함 피신 온 휴가 장병과 방위병, 예비군들을 남겨두고 16명의 현역들과 출동한 모양이다.

꿈속에서 들었던 총성이 현실임을 알고 온몸이 소름이 끼친다. 방금 울린 총성이 앰16 총성이기에 우리 현역들의 신변이 염려 되었다. 나는 당번병 에게 부대 잔류 병력의 안전을 맡기고 부대 앞 정문을 향해 돌진했다.

서른일곱의 나이를 잊은 체 마구 뛰어 단숨에 부락 어구 송전 철탑에 도달하니 논두렁 사이에서 인기척이 들려 온다

논두렁을 음폐물 로 삼아 낮은 포복자세로 30여미터 거리인 철탑(고압송전탑)부근에 이르자 선임하사 와 세 명의 현역병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낮은 소리로 "갈매기 갈매기" 암호를 확인한 후 이들과 합류 했다.

광주-목포 간 (신의주 1호선) 국도인 나주와 영산포의(구진포) 중간 지점을 차단하려고 도로변 철탑에 매복한 모양이다.

선임하사는 대뜸 ‘부대에 남아야 할 분이’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9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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