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궁(慶運宮) 앞에 환구단을 원형 복원하라

시사우리신문편집국 | 기사입력 2009/09/25 [18:25]

경운궁(慶運宮) 앞에 환구단을 원형 복원하라

시사우리신문편집국 | 입력 : 2009/09/25 [18:25]
한민족은 상고시대부터 10월 상순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하늘에 제사를 올려 국태민안을 기원해 왔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이라 국호를 정하고 심순택(沈舜澤)의 상소에 의해 경운궁 대안문 앞에 환구단(圜丘壇)을 쌓고, 10월12일 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환구단에 나아가 천제를 봉행하고 광무황제로 즉위하였다.

고종황제는 광무 원년 경운궁 앞에 환구단을 축조하였는데 황단(皇壇)이라고도 하며 단이 삼층이었다.1층은 장광이 144 척이며 둥글게 돌로 쌓아 석 자 높이로 쌓았고, 2층은 장광이 72 척이며 석자 높이로 쌓았고, 3층은 장광이 36척이며 석자 높이로 둥글게 쌓아 올렸고,바닥은 벽돌을 깔고 황단 주위를 둥글게 석축을 모으고 돌과 벽돌로 담을 쌓았으며,동서남북으로 황살문을 세웠고 남문은 문이 셋이다.

황천상제위(皇天上帝位)는 1층 북쪽 동편에서 남쪽을 향하고 있고, 황지지위(皇地祗位)는 1층 북쪽 서편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대명천(大明天)과 야명성위(夜明星位)는 2층 동쪽,서쪽에 있고, 북두칠성(北斗七星)·오성(五星)·이십팔수(二十八宿)·오악(五岳)·사해(四海)·명산(名山)·성황(城隍)은 3층 동쪽에 있으며, 운사(雲師)·우사(雨師)·풍백(風伯)·뇌사(雷師)·오진(五鎭)·사독(四瀆)·대천(大川)·사토(司土)는 3층 서쪽에 있다.

환구단의 건물과 터를 관리한 일제 총독부가 1913년 대한제국 황단 환구단을 헐고 호텔을 지었고 환구단 터는 현재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며 광무 3년(1899년)에 축조된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8각 3층 건물 황궁우(皇穹宇)와 화려하게 조각된 용(龍) 무늬가 있는 돌로 만든 석고(石鼓) 3개만 남아 있다.

일제 총독부가 제천단 환구단(圜丘壇)과 대한 황궁 경운궁 동편 권역을 철거하고 호텔,경성부를 악의적으로 설치하여 민족정기를 훼손하였으므로 경운궁과 환구단의 역사문화경관을 침해하는 경성부청사를 철거하고,경운궁 대안문 앞에 환구단을 복원, 환구대제를 봉행하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워야 한다.
 
한민족운동단체연합/김민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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