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 이병직 작품, 제자리 찾아 ‘무계원’으로

김은수 기자 | 기사입력 2018/10/08 [18:28]

송은 이병직 작품, 제자리 찾아 ‘무계원’으로

김은수 기자 | 입력 : 2018/10/08 [18:28]

미술품 수집으로 민족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켜낸 송은 이병직. 조선의 마지막 내시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미술품 수집가로, 서화가로 살다 간 그의 보석 같은 작품들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아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으로 온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이자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송은 이병직의 서화작품 8점을 종로구에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종로구는 10월 13일 오후 4시 무계원에서 '송은 이병직 서화작품 기증식'을 개최하고 감사의 뜻을 전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증식은 송은 이병직 서화작품 8점 기증·전시 오진암 이름의 유래가 된 오동나무 식재 소개 유홍준 교수 특강 ‘오진암 건물의 내력과 송은 이병직’ 이병직의 손자 ‘도혜스님’의 오진암에서의 생활 회고담 순으로 진행된다.

 

▲ 이병직-국화     © 시사우리신문편집국


이병직 선생은 생전 익선동의 큰 한옥에서 거주했는데 이곳은 한국전쟁 후 한정식 요정 ‘오진암’이 됐다. 서울시 등록음식점 1호이기도 한 오진암은 1910년대 초 대표적 상업용 도시한옥으로 보존가치가 뛰어날 뿐 아니라 남북 냉전체제를 대화국면으로 이끈 7.4 남북공동성명을 도출해 낸 장소이기도 했으나 세월이 흐르며 철거됐다.

 

구는 이렇듯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오진암을 부암동으로 옮겨 2014년 3월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으로 되살려냈다. 대문과 기와, 서까래, 기둥 등에 오진암의 자재를 사용해 지었으며 현재 한옥체험과 각종 전통문화행사 진행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무계원이 위치한 무계정사지 또한 안평대군이 꿈을 꾼 도원과 흡사해 화가 안견에게 3일 만에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했고, 정자를 지어 시를 읊으며 활을 쏘았다 전해지는 유서 깊은 장소이다. 

 

유홍준 교수는 이처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0권 서울편에서 무계원과 오진암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며 이곳에 송은 이병직의 작품이 단 하나도 걸려있지 않다는 점을 안타깝게 여겨 기증을 결심했다. 그는 옥션 등을 통해 구입한 이병직의 작품을 종로구에 기증하며 무계원을 찾는 관광객 누구나 이 공간이 지닌 오랜 역사를 알 수 있길 희망했다.

 

유 교수는 소동파의 적벽부 중 물각유주, 즉 ‘모든 물건에는 제각각 주인이 있다’는 말을 인용해 “평범한 물건도 자기 자리를 찾으면 귀해지는 법이다. 적어도 이병직 선생 작품 몇 점은 선생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맞겠다고 판단해 기증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도시한옥 오진암을 민·관이 뜻을 모아 재탄생시킨 곳이다. 이런 의미 있는 공간에 오진암을 추억할 수 있는 송은 이병직 선생의 귀한 서화작품까지 전시하게 돼 크나 큰 영광”이라며 “이병직 선생의 작품을 기꺼이 기증해주신 유홍준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전했다.

 

한편 송은 이병직 선생은 조선왕조 마지막 내시이자 서화가로 〈조선미술전람회〉에 여러 번 입선하였으며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의 초대 작가와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서화 감정·수집가로 명성을 떨쳤다. 아울러 평생 모은 수집품을 두 차례 경매에 붙여 여기서 모은 자금을 ‘양주중학교 설립을 위해 기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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