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운(國運)이란 나라의 운명. 즉 국명을 말한다.

시사우리신문편집국 | 기사입력 2018/02/19 [16:44]

국운(國運)이란 나라의 운명. 즉 국명을 말한다.

시사우리신문편집국 | 입력 : 2018/02/19 [16:44]

국운, 대운, 운수라는 말이 있다. 국운(國運)이란 나라의 운명. 즉 국명을 말한다. 운명(運命)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 또는 그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로서, 피할 수 없는 숙명(宿命)을 말한다. 

▲  2018 평창올림픽   ©

우리는 흔히 나라의 운명이 걸렸다는 말을 국운이 걸렸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운, 운수라는 말도 대운은 몹시 좋은 운수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돌아가는 길흉화복의 운수 중에 가장 좋은 운수를 만났을 때 우리는 흔히 대운을 만났다고 한다. 운수(運數) 역시, 사람에게 정해진 운명의 좋고 나쁨. 곧,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천운(天運)과 기수(氣數)로서 하늘이 정한 운수나 하늘의 저절로 오고 가고 한다는 길흉화복(禍福)의 운수로서 흔히들 운수가 나쁘니, 운수가 좋으니 하거나, 운수가 대통하였다는 말들로 자주 이 말들을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우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가리켜 국운이 걸린 평화 올림픽이라고들 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 국운이 걸린 평창 동계올림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왜? 우리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국운이 담긴 올림픽이라고 하는가? 여러분들은 그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운”이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운”이란, 어떤 일을 여럿이 한창 어울려 함께 하는 바람이다. 

 

이 말은 곧 어떤 것에 의하여 이미 정하여져 있는 목숨이나 처지로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숙명과는 달리, “운”이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인간적인 힘으로써 그 힘은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셋과 같이 그 수가 많으면 많아질수록 그 힘이 더욱 증폭되어져 그 소망과 그 염원이 결집되어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바람, 즉 피할 수 없는 숙명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결집된 에너지가 모여 무언가의 꿈을 이루어 나가는 초자연적인 힘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평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계 올림픽을 통하여 그와 같은 역사를 눈으로 보고 있다. 

 

대한민국 선수의 금메달은 물론 그 선수의 노력과 의지로써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숫한 경기에서 홈경기의 이점인 응원을 빼 놓을 수가 없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결집된 염원과 응원의 힘으로 기적과 같은 월드컵 4강의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는 우리의 바람인 수많은 매달보다도 더 큰 소망을 갖고 있다. 그것은 평창은 평화의 올림픽이라는 것이다. 평창(平昌)은 대한민국 강원도 중남부의 군이며 태백산맥의 중앙에 위치한다. 

 

한자의 해석으로는 평(平)으로 평평할 평, 나눌 편, 나눌 변, 다스릴 편으로 평평하다. 나누다. 바르게 하다. 평정하다. 고르다. 공평하다. 평온하다는 뜻이다. 창(昌)은 창성 창, 창성할 창으로 창성하다. 아름답다. 기쁨. 훌륭한 말. 어지럽다. 라는 말이다. 여기서 창성(昌盛)은 일이나 기세 따위가 크게 일어나 잘되어 간다는 말이다. 즉 평창(平昌)의 의미는 어지러운 기운이나 세력을 바로 잡으라는 얘기다. 이번의 동계 올림픽은 그러한 곳에서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평화(平和) 올림픽이라고 부르는 것은 평창이 평화를 부르는 의미로도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창(平昌)과 평화(平和)의 한자어와 한글의 의미는 물론 다르다. 그러나 평창의 창성할 창(昌)에 입구(口)자를 붙이면, 부를 창(唱)이 된다. 여기서 입구(口)자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작은 구멍·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에 쓰인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작은 입들이 모여 큰 구멍을 만든다는 얘기다. 

 

다시 설명하자면 창성할 창(昌)에 입구(口)자를 붙인 부를 창(唱)은 판소리나 잡가 등을 가락에 맞추어 높은 소리로 노래를 부름을 말하며, 그 소리란 여러 사람의 입이 모아질수록 커지게 마련이다. 평창(平昌)과 평창(平唱). 재미있지 않은가? 평창(平昌)에서 이루어지는 평화 올림픽. 여러분은 이것이 그냥 말장난에 지나는 우연한 현상이라고 보는가? 무주와 평창의 올림픽 개최지 중에 평창의 선택은 대운에 대한 국운의 선택이었다. 나의 말을 보충하자면 평창에 이은 또 하나의 개최 무주가 있다. 무주군(茂朱郡)은 대한민국 전라북도 동북부에 있으며 무주의 무(茂)는 우거질 무, 무성할 무로 우거지다. 가멸다. 왕성하다. 아름답다. 뛰어나다를 뜻한다. 주는 붉을 주(朱)로써 붉다. 붉은 빛깔을 띤 물건. 적토(赤土). 나무 이름. 줄기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주는 붉은 빛이 강하다는 얘기다. 평창은 조화를, 무주는 짙은 색을 의미한다. 

 

여러분들은 어찌 생각하는가?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세상과의 조화를 이루며 평화적 관계의 세상을 열어가기를 바란다면 평창과 무주 중에 어디로 대운이 몰리겠는가? 운이란 이런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앞날을 내다보고 하찮은 땅에 지명을 붙인 우리 선조들의 놀라운 인지력과 예지력이다.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운”과 기운에 대하여 얘기하고자 함은 평창 동계 올림픽을 통하여 우리민족의 대운을 지켜나가고 우리나라의 “대운”을 만들어 가자는 뜻에서다. 운이란 숙명과는 달리, 개인으로는 그 사람의 기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좋은 생각에 대한 좋은 에너지가 좋은 기운을 만들고 그 에너지 기운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 이것이 길운(吉運) 즉 좋은 운수이다. 

 

물론 나쁜 생각은 나쁜 기운이 되어 불운(不運) 즉 운수가 좋지 않거나 또는 그런 운수를 만든다. 국가적으로는 그러한 기운들이 모여 대운을 만드는데 어떠한 기운이 모이느냐에 따라 흥망성쇠를 이루는 국운이 결정된다. 지금 우리는 평창의 염원인 평화의 기운을 만들고 세계는 그 기운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염원은 지금 온전하지가 않다. 남한은 정치적으로는 개개인의 욕심으로 인하여 국운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고 혼탁하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한 목소리들로 국론은 분열되어져 우리의 마음들은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있다. 

 

남과 북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이 뜻을 하나로 합치지 못하는 관계로 남과 북은 이 좋은 시기에 대운을 잡지 못하고 있다. 어차피 남과 북이 회담을 필요로 한다면, 북의 말이 거짓이 되었던, 진실이 되었던,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해 우선 믿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만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우리가 서로 지난날의 과오와 선입감으로 인해 서로를 믿지 못하고 저울질만 하느라 시간을 허비 한다면, 우리의 대운은 소멸되고 우리에게 주어진 국운마저 파탄이 날것이다. 

 

나는 한국 당에 묻고 싶다. 당신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와 당신이 내세우는 주장들이 아집과 고집이 아닌가하고, 그리고 민주당에 묻고 싶다. 당신들의 도가 넘을 정도의 행보와 안일한 안주감에서 오는 정치가 과연 나라를 바로세우며 평창으로 응집된 국운을 바로 세우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길이냐고 묻고 싶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이 그냥 먹고 마시며 장난으로 하는 행동들이 쌓여 나라의 운명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무신론자들이던 유신론자들이던 종교인들은 교회가 되었건, 절이 되었건 어느 곳이던 모여 기도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종교의 염원으로 한마음이 되어 한 기운을 만들고자 함에 있다. 이제 나는 대한민국이 유신론자가 되었건 무신론자가 되었건, 한 마음 한 뜻으로 진짜로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염려하며 북한이 진실한 말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그들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조국 통일의 앞날을 내다보는 일에 우리의 기운을 모으자. 그리고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며 남을 헐뜯고 깔아뭉개기보다는, 남을 이해하고 남의 생각을 이해하려드는 나를 만들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할 때에 좋은 기운이 나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 우리민족의 국운을 새롭게 만들어보자. 그 누구라도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운을 해 하는 일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곧 평창의 성화는 커진다. 평창의 성화가 커지는 날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민족의 최대 염원인 남과 북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일에 국운을 걸어보자. 우리 모두의 기운을 모아보자. 그 일은 우리가 북한의 말과 행동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또 다시 폐쇄된 행보를 걷지 않도록 우선은 그들의 말을 믿어보자는 것이다. 

 

그들이 좋게 변했다면 우리의 선입관 역시 좋게 변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우선은 북의 저의가 어디에 있던 우리의 언론과 여론은 그들이 우리가 만든 잔칫상에서 그들이 춤을 추도록 하자. 그 춤이 거짓이라면 나중에 판을 뒤집으면 되는 일 아니가? 그러니 북에 대한 선입감을 갖은 국민들과 미국에 너무 치중한 문재인도 과감한 행보를 내딛기 바란다. 나의 이 말은 남과 북의 정상회담에 너무 신경을 쓰지 말라는 얘기다. 

 

남과 북의 정상회담은 부수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연현상이 되어야지 남북 정선회담이 최우선이거나 목표가 된다면 김대중과 노무현의 뒷길을 걷는 셈이 될 것이다. 북한 역시 이번에도 북한체제의 고립을 해결해보기 위한 속셈이라면 이솝동화에 나오는 양치기소년의 “늑대가 나타났어요!”를 들려주고 싶다. 인간들은 누구나 어떠한 일에 그 한계를 넘어서면 흥미를 잃는다. 

 

나는 북한이 그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민족은 지금 평창의 대운을 남과 북이라는 문제에 대한 국운의 열차로 슬기롭게 갈아탈 때라고 본다. 그리고 우리국민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개벽 같은 시기에 우리 모두의 기운을 모아 새로운 조국을 만들어 나갈 결심을 가시 한번 해야 할 때라고 본다. 우리는 우리민족의 선조들이 그러해 왔듯 우리들도 할 수 있다. 내일 모래는 3.1절이다. 남과 북에 이산가족을 비롯해 좋은 소식이 전해져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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