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발정제에 대한 기사를 보고 우리나라 과거 청춘사업 문화를 돌아본다.우리나라 여성들의 인권이 꽤나 많이 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것은 가시적이다.실지로 현재 여성의 인권은 추락하다 못해 진흙탕 속에 있다.
80년대만 해도 아시박기, 엎어치기, 보쌈, 무인도에 납치 등등 친구들의 도움으로 짝사랑 하는 여인과 결혼이 가능한 시절이 있었다. 내가 처녀 때만 해도 그런 것에 걸릴까봐서 어머니는 버스 정류장(차머리)에 언제나 마중 나와 계셨다.
밤에도 누가 업어 갈까봐서 큰 도사견을 내 방 창문 밑에서 기르셨다. 난 참 예쁘고 청순한 여자로 잘 커서 부모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하였지만, 친구들은 다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남자의 용기로 잡혀가서 결혼생활을 시작 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하나의 추억으로 생각 된다.
그 시절에 보편적인 문화였으니까. 서낭당에 보따리 싸고 있으면 과부를 데리고 가던 전통도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결혼하여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아이들도 잘 크고, 나보다 더 잘산다. 부부애도 특별히 좋다. 나는 이것저것 다 따지고 결혼해도 남자의 야망이 너무 커서 힘들 때가 많다. 가난한 집 장남에게 시집갈 용기 이면, 냉장고도 없는 오두막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 결혼하여 친구들은 남편과 오순도순 놀러 다니는데, 나는 남편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같이 놀러 가 본적은 딱 한번 밖에 없다. 그것도 차만 계속 타고 다니는 중국에 납치 되어 결혼한 친구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오죽 사랑 했으면 납치까지 했을까?’ 그 시절 총각이 사랑하는 처녀를 납치하거나 성으로 제압하면 여자들은 그 남자랑 결혼을 꼭 해야 된다는 문화였다. 남자가 하룻밤 즐기기 위하여 여자를 성폭력 하는 것이 아니고 평생 책임지고 데리고 살고, 아이도 낳아줄 아내를 얻는 하나의 방법 이었다. 나도 그 당시에는 나를 사랑하는 남자가 납치해 갔으면 좋겠다는 로망이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결혼을 많이 했었다. 홍준표 후보가 곤욕을 치를 일도 없다. 우리나라가 지금 가시적으로 여성의 인권이 신장한 것처럼 보인 것은 민주화 이후부터 이다. 여성학의 노력으로 여자들도 남자와 대등하게 되는 사회가 가시적으로는 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들어가 보면 그 내용은 다르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지금 몸과 마음이 다 위험하다. 남자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경쟁 대상자, 낮이나 밤이나 잠시가지고 놀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한다. 남의 여자도 주인이 없는 여자도 마찬가지 이다. 여자가 사회에서 성장을 하려면 옛날에 기생이 기둥서방을 두듯이 든든하게 지켜 줄 사람이 있는 여자가 더 크게 성공을 한다.
실지로 그렇다. 그렇지 않으면 밤 낮 슈퍼우먼이 되어서 실수 하나도 없는 악발이가 되어야만 남자와 대등한 위치에 갈 수 있다. 옷을 벗든지, 슈퍼우먼이 되든지. 내가 90년대부터 계속 계약직을 1,2년마다 전전하면서 보아온 것은 이것이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자존심을 팔면서 사랑하지도 않은 남자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래서 밟힌 적도 있다. 그래도 나는 잘 선택했다고 본다.
이런 세상을 누가 만들었는가?
국민들은 정신을 차리고 눈을 크게 뜨고 봐라. 우리나라는 좌파들에 의해서 시나브로 붕괴되어 가고 있다. 군대내 동성 간의 성행위도 인정하겠다고 하지 않은가? 그들은 군대도 무너뜨릴 생각이다. 시나브로 무너뜨려서 주적이 누군지도 모르는 문재인을 앞세워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하고, 그동안 돈 몇 푼 주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배급을 연습한 국민들에게 공산주의 사회를 안겨줄 생각이다.
여자는 남자가 그렇게 하면 다른데 시집을 못가고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갈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그 당시 괜찮은 남자들은 부모들의 눈을 피해 공공연히 여자를 납치해서 결혼에 성공하는 일이 통용이 되던 사회였다. 여자도 첨에는 싫지만 남자가 성실하기만 하면 그렇게 결혼해서도 잘 살고 있다. 용기 있는 남자가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얻는 방법 이 그 방법 이었다.
홍준표 후보의 회고록에 적혀 있는 내용은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 이다. 현재의 사람들의 도덕관념이 여성학의 발달로 가시적인 것만 변해서 비난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아니다.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이다. 법으로 어떻게 되어있든 그 시절에는 그것이 통용 되던 사회문화였다. <저작권자 ⓒ 시사우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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