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의원, “국군장교포로 박재수 대위, 신숙자씨 모녀, 납치된 일본여성,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 살아”

진화 기자 | 기사입력 2011/10/09 [13:18]

박선영 의원, “국군장교포로 박재수 대위, 신숙자씨 모녀, 납치된 일본여성, 2003년까지 요덕수용소에 살아”

진화 기자 | 입력 : 2011/10/09 [13:18]

북한에 협조하기를 거부한 국군장교포로와 신숙자씨 모녀, 그리고 일본에서 납치되어 간첩교육을 거부한 일본여성이 2003년까지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인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살고 있었지만, 신숙자씨 모녀는 2003년에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증언이 나왔다.

 

박선영 의원(자유선진당 정책위의장)은 오늘(10월 9일) 2007년에 탈북해 한국에 온 이영수씨(가명)로부터 “6·25때 중대장을 하다 포로가 된 육군대위 박재수씨와 신숙자씨 모녀, 그리고 일본에서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 왔으나 간첩교육을 거부한 일본인 여성이 요덕수용소 혁명화구역에 함께 살았다”는 증언을 녹취했다고 밝혔다.

 

박선영의원은 이영수씨가 “자신도 이들과 1994년까지 요덕수용소 같은 구역에서 살다가 오극렬, 리종옥 등 북한의 실세들 도움으로 사회로 나온 후 일종의 연락책임무를 맡아 수시로 요덕수용소를 드나들면서 국군포로 박재수 대위와 신숙자씨, 그리고 이름을 기억하지 못 하는 일본 여성을 2003년까지 보았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박재수 대위는 다른 장교들과는 달리 대남방송 등을 거부하다 들어왔으며, 거의 정신이 나가다시피한 신숙자씨는 그곳에서 ‘독일댁’으로 불렸는데 자신이 한 달에 두 번씩 그 독일댁에 나무땔감을 해다 주었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50대 후반의 일본인 여성은 ‘일본댁’으로 불리면서 요양원의 요리사로 일했다”고 밝혔다.

 

증언자 이씨가 이들을 마지막 본 것은 2003년으로, 그 해 9월 국군포로 장교인 박재수 대위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 ‘종신구역’으로 옮겨졌고, 비슷한 시기에 신숙자씨 모녀도 어디론가 짐을 싸 밤중에 옮겨졌다고 말한 것으로 박의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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