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증거를 역사법정에 보전신청하며

안기한 기자 | 기사입력 2019/05/19 [23:24]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증거를 역사법정에 보전신청하며

안기한 기자 | 입력 : 2019/05/19 [23:24]

자유한국당 심재철 국회의원은 19일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증거를 역사법정에 증거 보전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 심재철 의원     ©시사우리신문편집국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서 김대중씨가 한민통 의장이라는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를 입증시켜 사형선고를 받게 한 핵심증인은 당시 검찰이 증인으로 청구해 법무사작성의 증인조서를 쓴 3명(이희호씨와 피고인 김상현, 김녹영)과 불리한 공판진술을 한 이택돈씨였다. 검찰이 재판부에 제출한 증거목록 자료를 보면 김대중씨의 혐의를 입증한 핵심 증인으로 피고인 7명과 가족 등 최측근 인사 8명, 그 외 유력 증인 4명과 기타 증인 10명이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조작에 나서고 있는 민주당측 인사들의 파렴치한 정치선동을 고발하며 역사 법정에 증거보전을 신청한다. 

 

김대중씨 공소장과 증거목록 어디에도 심재철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모든 공소사실을 자백한 김대중씨의 자필진술서 2회(001648~1709쪽), 합수부 피의자진술조서 16회(000040~524쪽),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6회(001302~1505쪽) 등 총 751쪽의 기록 어디에도 심재철은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김대중씨는 검찰 피의자신문조서(4회~6회)에서 내란음모사건 피고인 등 25명에게 금품을 수교했고(피고인 17명과 서울대 이외 학생회장 등 6명을 포함) 49명에게서 금품을 받았음을 자백했고 가족의 진술서가 이를 부분적으로 입증했다.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16명은 김대중씨한테서 금품을 수수했다고 법정진술을 했으며, 민청협 피고인 5명은 타 피고인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사실을 법정에서 시인했다. 본 의원만 김대중씨나 타 피고인에게서 금품을 수수했다는 진술이 없었다.(故김상진열사 조의금은 학생회 통장을 거쳐 추모비건립과 유족에게 전달된 것이 확인되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첨부파일 자료로 본 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주장이 명백한 허위사실임이 확인된다.

 

김대중씨 공소장에는 본 의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김대중 공소장 첨부 파일 참조)

 

증거목록을 보면 김대중씨 등 피고인 전원이 본 의원이 입건되기 전에 이미 자백해서 공소사실이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증거목록에는 김대중씨의 공소사실(한민통, 광주봉기 자금 수교, 내란모의)을 입증하는 증언, 증거가 나오는데 김대중씨의 유죄를 입증한 증인은 총 29명이다.(동 피고인 7명, 이희호·김홍일 등 가족을 포함한 최측근 8명, 피고인 10명의 유죄를 입증한 국민연합 국장 이OO, 정동년, 홍OO 등 핵심 증인 4명, 그리고 기타 진술자 10명)

 

가. 사형선고의 근거인 반국가단체 한민통 수괴 혐의: 이희호씨와 김상현·김녹영 피고인 이 검찰측 참고인진술에 이어 검찰이 청구한 법무사 작성의 증인신문조서로 유죄입증.

 

나. 내란모의의 핵심 쟁점인 1980.5.12. 북악파크호텔 모의: 집권을 위해 유혈 폭력시위 불사를 모의했다는 피고 본인의 자백(6.14.피의자신문조서)과 함께 동 피고인 4명과 최측근 2명이 공소사실 입증.

 

다. 광주시위 자금 수교: 측근 비서의 증언과 방명록 등 증거, 사조직 국장의 법정 진술,법무사 작성의 정동년, 홍OO의 증인신문조서가 핵심증거로 유죄 입증.

 

김대중씨와 타 피고인의 증거목록 전체에 본 의원의 이름은 없다. 이는 김대중씨와 타 피고인의 공소사실에 본 의원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준다.

 

증거목록을 보면 김대중씨와 본 의원의 적용 범례(002226쪽)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겸 제 212호 내란음모 등: 김대중, 문OO, 이O영, 예OO, 고OO, 김상현 

겸 제 215호 계엄법 위반: 서OO, 김O완, 한OO, 이O동, 김O식, 한O상,유OO, 송OO, 이O철, 이택돈, 김녹영 

겸 제 278호 내란 음모등: 조OO, 이해찬, 이O표, 송OO, 설훈, 심재철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기록목록을 통틀어 김대중씨 혐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은 피고인 24인 중 심재철이 유일하다.

 

피고인 24인 중 심재철은 서울대 복학생 선배 이해찬과만 연관되어 있다. 심재철 이름은 이해찬씨의 자필진술서 4회와 피의자신문조서 4회에 등장할 뿐이다. 최근 민주당은 본 의원이 ‘이해찬씨를 통해 김대중씨 자금을 받았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이해찬씨 자백 진술서, 피의자신문조서와 수사기록, 공판 조서, 본 의원의 기록 전체에 그런 사실이 없다. 이해찬씨 증거목록에 수록된 공소사실을 입증한 10여명의 검찰측 참고인, 합수부 진술자와 검찰이 증인청구한 법무사작성의 증인신문조서를 쓴 3명, 2명의 법정 증인이 이해찬씨의 공소사실을 입증해 유죄판결이 되었다. 본 의원은 해당사항이 없다. 이해찬은 본 의원의 입건 전 모든 공소사실을 자백 진술하였고,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1심 첫 공판에서(5차) 공소사실을 전부 시인하였고 이는 1980.8.22. 신문에도 기사화되었다. 

 

위와 같은데도 민주당은 본 의원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검찰측 증인이며, 김대중씨의 사형과 타 피고인들이 중형을 선고받게 만들었다는 허위사실을 15년째 당 대변인과 사무총장의 입을 통해 유포했다. 최근에도 유시민씨 진술서 파문이 나자 서울대 민간인폭행사건의 공범인 더불어민주당의 윤호중 사무총장이 허위사실로 유시민씨를 엄호하고, 김대중정권과 노무현정권 때 청와대에서 각각 근무한 민주당 지역위원장과 일부 대학선배를 동원해 대학선배들 전체의 의견인양 침소봉대 왜곡하는 보도가 있었다. 유시민씨와 이해찬씨 대신 대리인들이 대거 카더라 통신으로 본 의원에 대한 파렴치한 공격에 나서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1998년 김대중정권 출범 초기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이 재조명되자 이해찬씨는 신동아 1998년 6월호를 통해 ‘심재철이 먼저 잡혀 자백한 것에 본인의 꿰맞춰져 고문받았다’는 허위사실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해찬이 1980.6.24. 먼저 체포되었고 심재철은 그 뒤인 6.30. 잡혔다. 

 

허위에 기반한 공격은 2004년에도 비슷했다. 2004년 12월 12일 집권여당인 민주당 대변인 김현미씨는 "김대중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됐을 때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와 사건을 완결시켜준 증인"이라며 "예수를 팔아 넘긴 가롯 유다“라는 논평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정작 김대중씨의 일본 한민통 수괴 혐의를 입증해줘 사형 선고를 받게 한 검찰측 증인이 부인 이희호씨와 측근 3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당 대변인의 허위는 대중에게 그대로 전파되었다. 하루 뒤 2004년 12월 13일 행동대원으로 나선 민주당 유기홍 지역위원장도 ”검찰 측 증인으로” 라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3일째인 2004년 12월 14일에는 민언련 사무총장 최민희씨가 악의적인 허위사실을 오마이뉴스에 기사형태로 포장했다. “그의 진술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은 '사실'이 되었고 관련자 대부분이 사형 이하 중형을 선고받았다.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며 울부짖던 이는 이해찬 총리였다고 한다. 조성우씨도 그의 허위진술에 대해 포효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만은 "심 동지, 고생 많았지?" 하며 그를 위로했다는 전언이다.” 

 

참으로 가증스러운 허위사실이자 소설이다. 당시 정부여당을 뒷배로 최민희씨의 뉴스로 포장한 소설은 본 의원에게 거짓 누명을 씌웠다. 김대중씨가 ‘심 동지, 고생 많았지’라고 했다는 것은 영웅만들기 드라마이고 다른 피고인들이 본 의원의 진술을 듣고 포효했다는 것은 파렴치한 거짓 선동이다. 1심은 대부분 분리신문으로 진행되었다. 2심 판결은 ‘분리심리는 재판절차위배’라는 피고측 주장에 대해서 ‘이유없다’고 판단했다.(2심 판결문 188~189쪽). 8차에서 10차까지 변호인단의 피고인 신문도 분리신문으로 재판이 진행되었다. 80년 당시 군검찰관이었던 정기용 변호사가 1994년 전두환 내란죄 재판에서 작성한 진술조서에서도 분리신문 했음이 확인된다. 본 의원의 공판(6차)과 조성우, 이해찬씨의 공판(5차)일이 달랐다. 본 의원은 김대중씨와 함께 공판장에서 진술한 적이 없다. 최후진술도 김대중씨는 19차 공판에서 했고 다른 피고인들은 18차 공판에서 했다. 

 

반대로 김대중씨는 법정에서 ”심재철이가 먼저 함석헌을 소개하고 저를 소개했는데 우리는 정치의 이용물이 아니라고 하며 저를 소개해서 서운한 마음이었는데 두세마디 했습니다.(1심 3차 공판조서00963~964쪽)”, “그 유족이 있어서 제가 20만원 함선생이 2만원 해서 22만원을 봉투에 넣어서 비서를 시켜서 주었고 분향소에 가보니 학생이 모여있었는데 함석헌 선생을 소개하고 저를 소개하는데 김대중이라고 해서 기분이 나빴는데 조사를 한마디 하고 왔습니다.”(1심 7차 공판조서 001677~1678쪽) 라며 서운함을 피력했었다. 최민희씨의 작문은 정부여당의 선동과 좌파 언론의 합작으로 정설인 것처럼 둔갑했고 최민희씨는 차기 총선 때 민주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발탁되었다. 

 

야당일 때는 잠잠하다가 민주당이 정부여당이 되니 다시 허위사실 유포가 등장했다. 2017년 12월 SBS 라디오 방송을 통해 김홍걸씨는 본 의원이 ‘5백만원을 받았다는 허위자백을 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SBS는 즉시 정정보도했지만 당사자인 김홍걸씨는 최근 유시민 진술서 파동에도 끼어들어 “신군부가 재판기록을 모두 없애 버려서 심 의원이 허위사실 주장을 하고 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했다. 팩트를 부정하는 것은 진실이 두려운 것이다. 

 

1994년에 전두환을 내란죄로 고소한 본 의원은 당시의 다른 피고인 10명과 함께 진술서를 써서 이해찬 의원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2005년 이 진술서가 허위사실 자백 진술서로 둔갑하고 문장이 날조되어 한겨레신문에 보도되었다. 2018년 한겨레신문은 이 허위기사를 재탕하며 “심재철의 증언으로 신군부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할 수 있었다”는 이해찬 의원 측의 말을 인용해 허위사실을 기사화했다. 

 

언론을 활용한 공격은 다시 반복되었다. 1998년 이해찬 의원을 통해 일괄 청구된 5.18 피해배상금을 지난 5월 16일 경향신문 기자가 문제 삼았다. 본 의원이 ‘유공자 등록을 거부했다’면서도 보상금 3천5백만원 받은 사실은 숨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본 의원은 이미 5월 3일 안형환-전여옥 유튜브 방송에서 보상금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국가가 불법구속하고 고문한 만큼 ‘피해자’에게 피해배상(‘보상’이 아니라 ‘배상’이 맞는 표현이지만 근거법이 ‘5·18보상법’이어서 국가에서는 ‘보상금’이라고 칭함)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 피고인 모두가 한날 한시 일괄 피해배상을 받았지만 본 의원은 발급된 무상의료보험증을 반납하고 지금까지 유공자 등록을 하지 않았다.(피해자와 유공자는 개념이 다름) 

 

지난 25년간 민주당은 정쟁의 수단으로 늘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을 꺼내들었다. 메시지가 궁하면 메신저에 대한 공격으로,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본인에 대한 공격을 반복한다. 최근에는 위의 유기홍, 최민희씨에 이어 유시민씨의 서울대프락치사건 공범이기도 한 민주당 사무총장이 나서 허위사실을 유포하더니, 이제 ‘신군부가 김대중내란음모사건 자료를 다 폐기해서 김대중씨도 대통령 재임시절 기록을 못봤다’는 허위사실 주장을 사실인양 유포했다.

 

이 사건 재판기록은 1988년 5.18광주민주화청문회 때 이해찬 국회의원을 포함해 청문위원들에게 회람된 바 있다. 또한 민주당은 2012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기록 일체를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했으며 이 기록은 국가기관 3곳에 보관 중이다. 이 기록들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지만 일반 대중에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진실 공개를 원하는 것 같지 않다. 

 

법률용어로 ‘증거보전 신청’이 있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 증거가 훼손될 위험이 있을 경우 법원에 해당 증거를 보전해달라고 신청을 하는 것이다. 본 의원은 역사법정에 증거보전하는 심정으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기록의 시작인 공소장과 검찰부가 군법보통회의에 제출한 증거목록을 국민 여러분께 공개한다. 역사 왜곡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공판조서를 비롯해 재판기록 전체를 공개할 용의가 있다. 

 

현 세대를 역사로 읽게 될 후대를 위해 김대중내란음모사건의 자료 공개는 마땅하다. 시중에 떠도는 김대중씨의 공소장이라는 것은 실제에서 5장이 누락되었다. 증거목록은 공소사실에 따라 증인, 증거별 입증취지를 적시한 것이다. 즉 해당 공소사실을 입증한 증인들의 진술서와 증거들의 목차인 셈이다. 개별 혐의들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입증이 되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기록이다. 각 번호별 증거, 증인에는 공소사실을 입증하는 구체적인 자필 진술서, 신문 조서, 검찰측 증인조서, 수사기록이 온전히 존재하며 역시 공개될 수 있다. 

 

2019년 4월 19일 마지막 피고인 심재철은 재심청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김대중 前대통령은 2014년 1월 29일 서울고등법원 재심청구재판에서 반국가단체인 한민통 수괴혐의(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외국환관리법위반은 면소(免訴)가 되었고 계엄법 등 일부는 무죄가 되었다. 시대의 진실을 찾는 일은 미래세대에게 교훈이 될 것이다.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내일의 역사가 된다. 역사법정에 여러분을 배심원으로 모신다. 

 

2019. 5. 19. 

심재철 국회의원 심 재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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